사대자소(事大字小)란 ‘작은 것은 큰 것을 섬기고 큰 것은 작은 것을 어여삐 살핀다’. 이 말은 ‘큰 나라는 작은 나라를 침략하지 않는다’ 라는 국가간 외교 관계에서 나온 말 이다. 유교문화나 국가간 외교의 가장 큰 특성은 그 관계가 서계적(序階的)구조로서 수직적 불평등 관계다.

최근 계룡시가 발칵 뒤집어 졌다. 논산시가 주민들을 대상으로 계룡시와의 통합에 대한 설문조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설문은 계룡시와의 통합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다. 두 자치단체의 통합을 위한 기초적 설문 수준이라고 하지만 계룡시는 일방적 흡수 통합되는 것 아니냐 하는 우려로 민감하다.

계룡시 지역에는 논산시와의 통합을 반대하는 플랜카드가 가로수와 전봇대를 뒤덮었다. 계룡시는 지난 2004년 국회 여야가 합의한 가운데 특별법에 의해 독립시로 승격된 곳이다. 충북 증평군도 괴산군에서 분리되어 독립적인 지방자치단체가 됐다.

계룡시는 규모(인구)와 관계없이 승격된 특별한 자치단체
계룡시가 탄생되기까지 우여곡절을 겪었다. 전례가 없었으며 법(法)적 근거도 없는 일을 해낸 것이다. 당시 계룡시 지역은 육군(陸軍), 공군(空軍), 해군(海軍)본부 등 국방의 수뇌부 역할을 하는 고급 장교들이 집중되어 있는 국방의 핵심지역임을 내세웠다. 특히 유일한 분단국가 대한민국의 군 수뇌부가 거주하는 고급 인력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반드시 독립적인 자치단체가 필요하다는 논리였다. 당시 인구는 3만명에 그쳐 시 승격의 규정에 턱없이 모자랐다.

청와대, 중앙정부(당시 행정자치부)국회 등 정치권을 대상으로 로비를 펼치고 시 승격비상대책위원회를 중심으로 상경 투쟁을 벌여 얻어낸 결실이다. 그러나 시 출범 10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이를 통합하려는 움직임은 행정적 낭비는 물론 명분조차 없다는 것이 계룡시민의 입장.

국방모범 도시로 군수뇌부, 인구급증 등 차별화 지역이다
앞서 전제한 바와 같이 시 승격 과정의 정당성을 살펴보면 두 자치단체는 통합논의의 대상은 아니다. 때문에 계룡시민은 분노하고 있다. 잠재된 갈등이 폭발 직전이다. 집단행동도 불사할 태세다. 시 승격 당시보다 더 큰 분노와 함께 정부가 그 원흉이라고 원망하고 있다. 시승격도 정부가 했고 통합도 정부가 중심에 있다. 갈등을 유발하는 주체가 중앙 정부인 셈이다.

계룡시민은 해마다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대전광역시의 배후도시로서 유입 인구가 급증하고 있다. 충남 16시군 중 천안, 아산, 당진, 서산시와 함께 상위권이다. 계룡시는 이즈음에 논산시와 통합이 아니라 연산면과 벌곡면을 계룡시로 편입(넘겨)시켜 달라고 맞불을 놓는다.

과거 한지붕에서 살다가 시 승격과 함께 독립 자치단체가 되었으나 학,지,혈연 관계는 남아있다. 자칫 중앙정부의 논리로 통합 논쟁이 가열되면서 두 자치단체의 정면충돌이 불가피하고 결국 공동체가 무너지고 심각한 갈등을 불러오게 된다.

논산시는 통합의 설문조사에 앞서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그리고 심도있게 이 문제를 접근해야 한다. 통합은 각종 비용을 줄이고 행정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지 반목과 대립으로 행정을 마비시키고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면서 갈등을 초래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사전에 갈등영향분석을 실시 해보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다. 통합을 주창하는 중앙정부와 일부 학자는 통합만이 살길이라고 한다. 초고령화 시대, 지역의 인구가 급감하고 있는데....
100년전 행정조직 체제로는 더 이상 경쟁력이 없다는 근거다.

우리는 분리와 통합의 병폐를 경험했다
1986년 충남 아산군을 온양시와 아산군으로 공주군을 공주시와 공주군, 보령군을 대천시와 보령군, 서산군을 서산시와 태안군으로 분리하였다. 1995년 아산시, 보령시, 공주시로 각각 통합하였고 서산은 태안군과 서산시로 존치시킨 사례가 있다

이들 통합시의 사례를 보면 분리 기간이 불과 8년여 이었지만 주민, 단체, 공무원 등 통합후의 관계는 서로 기득권의 주장과 단체장 선임, 명칭등 17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도 소지역주의 감정이 깊이 내재되어 있다

작을 수 록 경쟁력이 높아지는 진정한 지방자치
태국은 1960년대 큰 우물과 작은 우물 여러 곳을 만들어 주민들에게 이용하도록 하는 실험을 한 결과 작은 우물 여러 곳을 만들어 사용하는 것이 큰 우물 하나를 사용하도록 하는 것보다 편리성이 훨씬 높았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남미에 우파스(Upas)라는 나무는 뿌리가 워낙 번성하고 독성을 갖고 있어 주변에 나무와 식물들이 공생(共生)하지 못한다.
프랑스는 2003년 헌법 제1조를 고쳐 ‘프랑스는 지방분권에 기초한 국가이다’ 라고 천명했고 꼬뮌(Commune)시는 2천명이 채 안 되는 지자체를 존치시키는 등 지방을 우선으로 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영국은 2011년 지역 주권법<Localism Act2100>을 제정하여 중앙의 권한을 지방에 이양하는데 그치지 않고 지역사회와 지역주민에게까지 확대했다.

일본 남부도시 도쿠시마현 가미카쓰(上勝)마을은 인구 1,904명 중 65세 이상이 49,7%(946명)로 초고령화 지역이며,전체 면적의 89%가 임야로 되어 있다. 이들은 (주)이로도리라는 마을기업(Community Business)을 만들어 단풍 나뭇잎, 감잎, 꽃잎 등을 수집, 음식점에 전량 판매하여 연간 3억엔(한화45억원)의 수익을 내면서 젊은이들이 귀농하는 등 작지만 경쟁력 있는 자치활동으로 자력갱생(自力更生)하고 있다.

분리와 통합은 갈등과 비용 부담만 커질 뿐.....
계룡시는 시 승격 추진에 5년 이상의 기간이 걸렸고 엄청난 인력과 비용이 투입되었다. 이 과정에서 중앙정부와 심대한 공공갈등을 겪은 바 있다. 이제 또 다시 통합을 추진한다면 지역간 갈등으로 얼룩지면서 앞으로 5년 또는 10년이 지나도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남기게 된다.

자치단체의 규모가 크다고 해서 행정의 효율성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며 작다고 통합하는 것 만 능사가 아니다. 문제는 크기와 관계없이 소속되어 있는 구성원들이 어떻게 스스로의 삶의 질과 환경을 만들어 가느냐가 관건일 수 있다. 행정의 편의성만 앞세우며 ‘분리했다’ ‘통합했다’를 반복한다면 결국 지역의 공동체는 반목과 대립으로 붕괴되고 예산낭비는 물론 정부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는 일을 자초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굳이 짝짓기(통합)를 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에 먼저 답해야 한다.

이 준 건 / 李 準 建
행정학박사, 한밭대학교 겸임교수, 한국공공행정연구원 갈등연구소장, 상생협력갈등포럼 갈등조정위원장, 한국갈등관리학회 조정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