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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홍철시장이 남은 과제
공칠과삼에 자유로운 시장으로 기억되길
승인 2013년 09월 22일 (일) 13:35:06 충청인터넷신문 hgkim@hanmail.net

   
 
1993년 3월5일 40대 후반의 젊은 염홍철 시장(官選4대)으로 부임한지 20년이 넘었다. ‘93년 대전엑스포’ 개최 준비가 한창이던 시기다. 대전엑스포는 국민적 성원으로 1천만명을 초과 달성하면서 성공했다. 그 중심에 염홍철시장이 있었다. 부임 6개월만에 값진 성과를 냈고 엑스포를 성공적으로 치른 4반세기 이상 발전을 앞당겼다는 평가를 받았다.

95년 지방자치가 부활하면서 염홍철시장은 그 화려한 빛을 뒤로하고 선거에서 고배를 마셨고 이듬해 치러진 15대 총선에서 서구(을)에 출마했으나 김종필총재가 이끄는 자유민주연합(이하 자민련)바람에 힘없이 쓰러졌다. 98년 대전시장에 재도전, 홍선기시장의 벽을 넘지 못했다.

임기 절반 채우고 한밭대총장직 헌신짝처럼 버려
충청권의 텃밭인 자민련의 벽을 실감한 염홍철 전시장은 정치권을 비켜 한밭대학교 총장직으로 자리를 옮긴다. 정가(政街)는 그가 임기를 채울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이 컷고 염총장은 “보장된 임기를 지키겠다며 대학발전에 온힘을 쏟겠다”공언했다. 그러나 임기 절반을 남겨둔 2002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돌연 총장직을 사퇴하고 대전광역시장 선거에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2차례 총선 2차례 시장선거 낙선 후 당선이어서 감회를 눈물로 화답했다.

시장 후보시절 을지대 의대 인허가 개입 등으로 사법당국의 조사를 받고 유죄판결을 받은 염 시장은 항소심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선거전에서 네거티브를 극복하고 당선됐다. 그리고 재임기간 중 사상 초유의 건설비리가 터졌다. K건설사가 턴키베이스공사를 수주하는 과정에서 건설본부와 수년간 유착한 사실이었다. 단일 건설 비리사건으로 최대 규모였다. 공무원이 목숨을 끊고 책임자가 물러나고 건설사 간부가 구속됐지만 사법당국의 칼끝은 윗선까지 향하지 않았다.

정당은 정강정책이 자신의 철학과 부합할 때 선택하는 것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헌재의 위헌판정이 전국을 흔드는 초유의 사태가 계속되는 시점에 염시장은 수도이전에 적극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열린우리당(여당)으로 입당했다. 당선은 한나라당 후보로 남은 반쪽의 임기는 열린우리당에서 채웠다. 그리고 국민중심당 창당을 앞두고 지역정가는 심대평전충남지사와 염시장이 손잡고 교두보적 역할을 기대했으나 염시장은 현실과 거리를 두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한지붕에서 일했던 박성효부시장의 도전장에 고배를 마신다. 시장과 부시장으로 시정을 함께 했으나 실정(失政)에 대한 책임공방을 넘어 감정으로 비화되면서 대전시민을 실망시킨 선거였고 염시장은 큰 상처를 입었다. 아랫사람과 대결한 패배이어서 상실감이 컸다.

하지만 노무현정권은 그를 중소기업중앙회장(장관급)으로 발탁했고 노무현정권과 임기를 함께 한 후 탈당한 그는 무소속으로 남아 지역을 지켰다. 지난 2010년 선거 2개월여를 앞두고 자유선진당에 입당, 박성효후보를 제치며 설욕했다. 대선을 앞두고 자유선진당은 문을 닫고 새누리당과 합당했다.

재임기간 가장 많은 갈등을 유발한 단체장.
도시철도2호선 노선문제는 대덕구민과 엑스포재창조사업(롯데테마파크)과 2호선 건설방식은 시민단체와 신세계스킨스케어 사업은 중앙정부와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건설과는 정치권과 갈등했다. 재임기간 중 역점을 두고 추진해온 현안사업이 3년이 넘도록 제대로 추진되지 못했다. 재임 중 언론과 불편한 관계를 맺으며 법적 싸움까지하며 갈등은 지속됐다. 지난 8월26일 염시장은 내년 6월 지자체선거에 불출마를 선언했다.

지역 정가는 의외였지만 사실상 올 것이 왔다는게 일반적 견해다. 관선시장1회, 민선 2회, 국립대총장, 중소기업중앙회장(장관급), 한국공항관리공단이사장(국토부산하기관) 등 20년이 넘는 세월을 지역에 기반을 두고 정치했다. 그만큼 대전시민에게 진 빚도 많다.

공칠과삼(功七過三論)의 저울에 부담없이 오르는 시장되길
어떠한 정치인이든 마지막 떠나는 뒷모습은 아름답지 못하다. 그래서 뭇사람들은 정치에 발을 넣으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염시장의 불출마는 아름다운 퇴장이라는 평가다. 지난 2006년 이원종 충북지사도 3선의 기회를 포기하고 후배를 위해 자리를 내준 것이 두고 두고 150만 충북도민이 격찬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원종 전 지사는 여느 정치인과 달리 아름다운 정치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우리사회는 정치인으로 낙인되는 순간부터 공(功)과 과(過)를 저울질 한다. 공보다 과에 저울의 눈을 맞춘다. 그만큼 정치인에 대한 불신이 크다는 의미이고 인색하다는 이야기다. 국민은 정치인에게 무한한 도덕성과 가능성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역사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공칠과삼론(功七過三論)이 있다. 정치를 하겠다고 나선 사람의 치적, 즉 공에 대한 평가가 많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대전지역 정치의 획을 그은 염시장의 공칠과삼론의 저울대는 어느쪽일까?

적어도 시민의 눈높이에 답을 만들려면 지금부터 대전 시민에게 진 빚을 갚는데 역량을 쏟아야 한다. 그 길은 그동안 꾸려온 시정을 하나하나 매듭짓는 일이다. 정권과 정치적으로가 아닌 순수한 지방행정 수령으로 말이다. 정치인은 든자리보다 난자리가 오래 기억되어야 한다. 퇴임 후 150만 대전시민이 공칠과삼론의 저울대를 들여대더라도 마음편이 올라설 수 있어야 하며 그 기울이기는 공을 많이 남긴 시장으로 역사속에 기억되길 충심한다.

이준건 /李 準 建, 행정학박사 한국갈등조정연구원장 청양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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